자유

급똥 와서 도시를 누빈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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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브로

1개월 전

급똥 와서 도시를 누빈 날

지하철역에서 배가 경고음을 울렸다

그날 나는 진짜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하철 2호선에서 잃을 뻔했다. 점심에 먹은 매운 제육이 오후 네 시쯤 갑자기 출석 체크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아, 신호 오네’ 정도였는데, 두 정거장 지나니까 뱃속에서 누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이 아니라 쾅쾅.

마침 거래처 갔다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라 가방도 무겁고,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들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평온한 직장인 표정으로 검색했다. “근처 화장실.” 그런데 지도는 왜 그럴 때만 자신감 있게 공원 화장실을 추천하는지 모르겠다. 거리 450m. 내 장 상태 기준으로는 해외여행이었다.

눈앞의 카페, 그리고 예상 못 한 함정

눈앞의 카페, 그리고 예상 못 한 함정

역 출구로 올라오자마자 카페가 보였다. 구세주 같았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감사 인사까지 했다. “화장실 비밀번호 좀…” 하려는 순간 직원분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손님, 지금 화장실 고장이라 옆 건물 이용하셔야 해요.” 그 말 듣는 순간 내 안의 모든 장기가 단체로 침묵했다.

옆 건물까지 걸어가는데 평소라면 30초 거리였다. 근데 그날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보스전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불이 켜졌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표정으로 신호등을 노려봤다. 옆에 있던 초등학생이 엄마한테 “저 아저씨 화났나 봐”라고 했다. 아니야… 화난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 중이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심리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심리전

건물에 들어가니 화장실은 3층. 계단? 불가능.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열리자 배달 기사님, 아주머니 두 분, 그리고 유모차가 있었다. 나는 조심히 몸을 구겨 넣었다. 그때 누군가 2층을 눌렀다. 내 영혼이 잠깐 나갔다 왔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그 5초 동안 나는 벽에 붙어 ‘괜찮다, 아직 사회적 사망은 아니다’라고 주문을 외웠다.

드디어 3층. 화장실 표지판을 보고 거의 영화처럼 뛰었다. 그런데 남자 화장실 문 앞에 청소 중 팻말이 서 있었다. 진짜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너무 절망하면 사람이 웃는다더니 맞았다. 안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나오시길 기다리며 “저… 혹시…” 하고 말하자마자 표정을 보시더니 바로 길을 터주셨다. 인간애는 이런 데서 느끼는 거였다.

살아 돌아온 뒤 알게 된 진실

모든 위기를 넘기고 손을 씻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이 회식 다음 날보다 더 하얬다. 회사 단톡방에 “나 조금 늦음”이라고 보내자 동기가 답했다. “왜? 또 화장실 투어?” 알고 보니 나는 지난달에도 비슷한 이유로 사라진 전적이 있었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운다지만, 나는 화장실 위치만 배운다.

그날 이후로 내 지도 앱 즐겨찾기에는 맛집보다 화장실이 많아졌다. 카페, 백화점, 지하철역, 공공기관까지 별점 대신 ‘급할 때 안전한가’로 평가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교훈 하나. 매운 제육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신 뒤 지하철 타는 건, 스스로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다. 다음엔 안 그러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제 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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